2014년 1월 15일 수요일

룩셈부르크 : 경제성장

1839년 이후 신생국가인 룩셈부르크에 가장 도전적인 일은 실행가능한 경제 계발 계획을 진행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룩셈부르크는 시대에 뒤떨어진 농업국가 였습니다. 이 곳은 제혁, 섬유, 도기, 제지, 양조 등과 같은 소규모 수공업 중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소수였었고 규모도 작았습니다. 룩셈부르크는 지리적 고립과 경제적 상황으로부터 힘든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 작은 나라에게 경제발전의 의미는 나라의 개방을 의미했습니다. 1842년 룩셈부르크 대공국은 (19세기 독일의) 관세동맹에 가입합니다. 라인강 이변을 넘나드는 큰 시장과 연결될 수 있게 해주던 이 연합은 룩셈부르크에게 많은 이점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독일은 중공업을 개발하는데 필요한 자본과 노동을 제공 했습니다. 하지만 다가 올 경제무역을 위하여, (도시 간 의) 도로노선의 연결이 요구 되었습니다. 철도(라인들)의 건설은 -룩셈부르크와 티응빌(Thionville) 사이의 첫 연결은 1859년에 개시되었다- 대공국과 바깥세계를 연결했을 뿐만 아니라 국내 지역 또한 긴밀히 연결하게 되었습니다.  





관세동맹의 회원자격 그리고 철도 네트워크는 공업화 사회로 진입하는 유리한 조건들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룩셈부르크의 공업혁명을 이끌었던 것은 1840년초 룩셈부르크 남부에 매장된 철광석의 발견이었습니다. 1870년부터 계속 대규모의 철강작업들이 일어났습니다. 미네뜨(minette: 흑운모와 정장석(正長石)을 주성분으로 하는 황반암(煌斑岩)(lamprophyre)의 일종.)라고 불리우는, 인을 많이 함유한 룩셈부르크의 광석들을 처음에는 단점으로 여겨졌으나, 1879 년 영국의 시드니 토마스가 발견한 제강공법으로 룩셈부르크의 인이 함유된 선철은 강철로 변환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개시 전 날, 룩셈부르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철강 생산자들 여섯 나라 중 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1911년 뒤들랑주, 아이히, 부르바흐 등 세 개의 철강회사가 합병하여 룩셈부르크의 대표 철강업체인 아르베드(ARBED : Aciéries Réunies de Burbach-Eich-Dudelange )가 탄생하였습니다.

철강산업은 1973년 석유파동으로 인해 타격을 받고 쇠퇴하기 시작하기 전까지 룩셈부르크 주요한 경제산업으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룩셈부르크의 노동인구의 25%의 고용과 거의 60%에 육박하는 국가산업총생산량을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철강산업은 룩셈부르크 국가재산의 주요 근원으로서, 산업시대동안 룩셈부르크 사람들이 영유하던 높은 수준의 삶의 근간이 되었던 산업이었습니다.


Avenue de la Liberté거리에 있는 ARBED본사건물. 
높은 유지&보수 비용 때문에, 현재는 근교의 현대적건물로 이전되었다.

산업화는 나라의 인구와 사회구조를 변화시켰습니다. 나라북부의 외즐리의 농부들은 광산이나 공장에서 일하려고 그들의 땅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지역노동시장의 수요는 이들만으로는 충족되지 않았습니다. 1890년부터 지금까지다른나라로의 해외이민은 사실상 멈추었고 룩셈부르크는 이민국이 되었습니다. 외국인들은 여러물결은 타고 도착했습니다. 처음엔 독일인들이, 그다음엔 이탈리아인들이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1960년대부터 계속 포르투갈 사람들이 룩셈부르크로 이민을 오고 있습니다. 1910년 이민자는 이미 전체인구의 15.3%를 넘어섰으며, 오늘날, 이민자는 거의 42%에 육박하게 되었습니다. 노동 뿐만아니라, 자본과 시장에 대한 높은 해외 의존도는 룩셈부르크 경제의 영구적인 특성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룩셈부르크는 세계2차대전 직 후, 독일과의 관세동맹을 철회하고, 1921년 7월 25일 벨기에와의 경제및 통화연합( BLEU : Belgium-Luxembourg Economic Union)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이 조약은 50년동안 지속되는 것이었으나, 이 후 두 번 더 연장되었습니다. 아직 벨기에와 룩셈부르크 경제연합은 두 나라 사이를 오랫동안 하나로 묶어 놓았습니다. 벨기에 프랑이 보통 화폐로 통용되었기는 하지만 ,룩셈부르크는 룩셈부르크 통화를 발행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참고 : 네이버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History of the Grand duchy of Luxembourg,Wort.lu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