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있는 그대로 머물기를 희망한다
1867년 위기가 찾아 왔을 때, 룩셈부르크 국민들은 빌럼3세에 대한 강력한 항의의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Mir wëlle bleiwe wat mir sinn“ (우리는 있는 그대로 머물기를 희망한다) 라는 슬로건은 룩셈부르크 국민들에게 인기를 얻었습니다. 독립적인 국가를 이룩하는 첫 번째 할 일은 제도적인 틀을 구성하는 것이었습니다. 1848년, 1856년 그리고 1868년 세 번의 연속적인 헌법개정으로 젊은 도시를 위한 기틀을 마련하게 됩니다. 또한 정부, 의회와 대공작 사이의 권력과 그에 따른 책임에 관한 공정한 균형을 유지하는데 중점을 두어 설립되었습니다.
룩셈부르크의 완전한 독립은 1890년 빌럼 3세의 서거 이 후에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민주주의는 남녀 모두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1919년이 후에 이루어 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계 1차대전발발 전, 정치적 정당들의 출현으로 룩셈부르크의 정당정치가 시작됩니다. 사회당은 1902-1903년 사이, 자유주의 연합은 1904년에, 우파당은 1914년에 생성되었습니다. 공산당은 사회당으로부터의 분리 이 후 1921년에 설립되었습니다. 1919년 이후 모든 정치적 연립정부는 (1925-1926년과 1974-1979년을 제외하고) 쭉- 우파당에 의해 집권 되고 있습니다, 우파당은 1945년 이 후, 기독교 사회당 (CSV:Chreschtlech Sozial Vollekspartei)으로 이름을 바꾸고 현재까지도 다수여당으로 집권하고 있습니다.
룩셈부르크인의 진정한 애국심의 발로는 1839년 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벨기에의 혁명을 지지하던 룩셈부르크인들은 벨기에로 부터의 분리를 아쉬워 했습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룩셈부르크인들은 그들의 나라에서 자유적인 자치권을 가지며 지낼 수 있는 장점들의 진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벨기에 혁명 20년 후인 1859 년, 최초의 철도청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애국 노래는 이 후, 룩셈부르크의 진정한 국민가요로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 Kommt hier aus Frankräich, Belgie, Preisen,
- Mir wellen iech ons Hémecht weisen,
- Frot dir no alle Säiten hin,
- Mir welle bleiwe wat mir sin.
In English, this reads:
- Come here from France, Belgium, Prussia,
- we want to show you our fatherland
- ask in all directions,
- We want to remain what we are.
하지만 Ons Hèmecht (우리의 조국)이 공식적인 국가로서 승인받으며 1864년 처음으로 공식적인 자리에서 울려 퍼지게 됩니다. 이 후 1895년 정식국가로 제정되었습니다. Ons Hèmecht 는 미셀 렌츠의 시에 장-안토옌 진넨의 음악이 더해진 룩셈부르크의 국가입니다.
Ons Hèmecht 듣기
19세기 중반부터 계속 된 룩셈부르크인의 애국심은 독일에 의해 흡수될 위험들이 높아지면서, 반독일 정서의 경향을 띄게 되었습니다. 1815년부터 1866년까지 룩셈부르크는 독일 연방에 가입되어 있었습니다. 독일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하여 룩셈부르크는 프랑스에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룩셈부르크는 이중언어, 심지어 삼중언어를 하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어는 일상생활 뿐만 아니라 행정부와 사법부의 공식언어로 채택 되었습니다. 표면적으로 룩셈부르크는 프랑스와 가까워 지는 듯 보였지만, 사실 룩셈부르크는 독일, 프랑스 ,벨기에 어느쪽도 아닌 이 세 나라의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며 독립국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나가고 있었습니다.
Ons Hèmecht 듣기
19세기 중반부터 계속 된 룩셈부르크인의 애국심은 독일에 의해 흡수될 위험들이 높아지면서, 반독일 정서의 경향을 띄게 되었습니다. 1815년부터 1866년까지 룩셈부르크는 독일 연방에 가입되어 있었습니다. 독일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하여 룩셈부르크는 프랑스에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룩셈부르크는 이중언어, 심지어 삼중언어를 하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어는 일상생활 뿐만 아니라 행정부와 사법부의 공식언어로 채택 되었습니다. 표면적으로 룩셈부르크는 프랑스와 가까워 지는 듯 보였지만, 사실 룩셈부르크는 독일, 프랑스 ,벨기에 어느쪽도 아닌 이 세 나라의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며 독립국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나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