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9일 월요일

룩셈부르크 : 정치적 위기 그리고 1919 국민투표



독일군의 후퇴 직 후, 위기는 바로 찾아왔습니다.  좌파세력의 대표는 의회에서 공작가의 퇴위를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전쟁 중에 점령군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과 정치적으로 우파세력을 지지하던 것에 대해 대공을 비난했습니다. 발의는 가까스로 저지되었습니다. 국제적으로도 룩셈부르크 정부는 여대공 마리-아델레이드에 관한 비판에 직면해야했습니다. 프랑스와 벨기에는 룩셈부르크의 독립에 반향의 위험을 지닌 비밀 협상들을 수행 하였습니다. 1919년 1월 9일, 룩셈부르크 자원군은 반란을 일으키고, 공공 안전 위원회는 룩셈부르크가 공화국임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프랑스 군대의 신속한 개입에 의해 저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대공 마리-아델레이드 의 위치는 ​​확실히 위태로워지게 되었습니다. 1919년 1월 15일, 마리-아델레이드는 여대공의 지위를 동생인 샤를로테에게 양위하기로  지체없이 결정 하였습니다. 

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룩셈부르크 정부는 두가지의 안건에 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국민은 국가의 형태(대공국으로 머물 것인지 아니면 공화국으로 나아갈지)와 국가의 경제 방향의 형태(관세 동맹의 탈퇴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승전국들이 베르사유에 모여 유럽의 지도를 다시 그리려던 때, 윌슨의 민족 자결 원칙에 따라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인상을 주려는 의도가 있었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여대공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국민투표가 실시 되었습니다. 1919년 9월 28일, 첫 보통 선거가 처음으로 실시되고, 투표자의 대다수는 군주제 유지에 찬성(80%) 하였으며, 프랑스와의 경제 연합(73%) 을 지지하였습니다.


양대전사이의 기간

1920 년대의 경제 복구 후, (룩셈부르크는 해를 입지 않았지만) 세계 경제 선언을 촉발하는 위기가 1930 년대에 다시 찾아왔습니다. 불경기로 인한 정리해고는 일이 없으면 본국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특히 많은 영향을 미쳤기에 대공국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실업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경제 위기는 공산당에 어느 정도의 힘을 실어 주게 되었습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광산등지의 노동자들 사이에 인기 얻었지만, 보수원 사이에서 우려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1937 년에 정부는 정치 와 사회 질서를 보호하기 위해서 라는 명분을 앞세워 공산당을 불법화 하려 했습니다.  반대세력의 힘을 무력화 하기 위해 법을 이용해 탄압했던 것입니다. 의회의 찬성에도 불구하고, 유권자의 대부분은 의사표현의 자유를 침해 할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국민 투표에서 공산당의 해체를 거부했습니다. 

국제적으로 룩셈부르크는 여전히 중립을 유지하면서, 제네바에 있는 국제연맹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그 위치를 강화 하였습니다. 그러나 1933 년 독일에서 나치 정권의 창설됨으로써 외부로부터의 위협의 그림자가 다시 한 번 드리워지게 되었습니다.

참조 :  History of the Grand duchy of Luxembourg

2014년 3월 28일 금요일

2014.3 Notre Dame de Paris



2006년 노트르담 드 파리 오리지널 내한 이후 8년만에(!) 다시 만난 이 공연! 세종문화회관 3층 발코니에서 정말 뛰어 내려가고 싶었던 그 무대, 그래서 그 뒤로는 공연은 왠만하면 좋은자리에서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그 때 정말 밥을 몇끼 굶더라도 1층석에서 보았어야 했다 ㅠㅠ) 정말 씨디를 백만번도 넘게 들어서 불어는 몰라도 멜로디는 다 꿰고 있는데, 이번에 온 팀은 영어버전 이란다 ㅠㅠ 오 마이 갓! 처음엔 안보러 가려고 했었다. 다른 무대는 몰라도 이 무대는 정말 못 알아들어도 절대 불어로 봐야하는 무대라, 불어가 아니면 안되!라고 생각하는 나였기에. 때문에 불어버전이랑 자꾸 비교하게 되서 공연에 집중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정말 주교 캐릭터만 몰입 할 수 있었고, 다른 캐릭은 오리지널이 더 나았다는 생각이 ㅠㅠ) 하지만 클라스는 영원하다고, 다시 만난 공연은 역시나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오리지널 작품 캐릭터들의 연기가 워낙 뛰어나다보니(그랭구아르와 클로팽은 정말 극 중 이야기와는 거의 별 상관없이 정말 노래하는 배우의 매력으로만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 그러고보면 그랭구아르역의 브루노가 이 역할을 맡은건 정말 대박이었다) 정말 8년 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확실히 나이를 먹었구나 하고 느끼는게, 캐릭터들에 대해 이 전과는 또 다른 시각에서 보게 되고, 생각하게 되어서 이다. 

캐릭터들의 계층은 정말 명확하게 나뉘어져 있다. 프롤로(부주교)>피뷔스(군인)>...(넘사벽)...그랭구아르(음유시인),클로팽(집시)>에스메랄다(집시),콰지모도(종지기)정도로 나눌 수 있겠다. 전부터도 좋았지만 가장 인상깊었던 캐릭터는 역시 부주교! 이 양반의 에스메랄다에 대한 (사랑을 가장한) 집착은 정말 상상 초월이다. 가장 상위 계층이기에 할 수 있는 일도 아주 많다. 밑에 다른 캐릭터도 마음대로 부리고(콰지모도), 회유하고(피뷔스),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인데, 단지 얻을 수 없는 것은 여인의 마음! 그것도 자기보다 하위계급의! 그러니까 아주 미치고 팔짝 뛰는 거지. 거기에 원래부터 여자를 탐하면 안되는 신부라는 정말 완벽하게 멋진 캐릭터 설정까지!! 이 설정 부터가 이 둘은 절대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다. 거기다 겉으로는 신부라는 아주 신성하고 그럴듯한 탈을 쓰고, 뒤로는 모든 추잡스러운 일(납치,상해,모함)을 꾸미고 실행 하는것도 이 캐릭터가 가진 선과 악의 대비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도 새파랗게 젊고 이쁜 여자가 늙다리 신부를 사랑할리도 만무하다. 나이든 남자의 젊은 여자에 대한 욕망. 이 역시도 당연히 노.노.네버. 당근 안되는 거다. 남자는 늙어가는 것을 부정하고 싶고, 나는 아직 (그정도로) 늙지 않았어! 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이 역시도 안타까운 현실 부정일 뿐. 부주교의 사랑은 전반적으로 거의 금기에 가깝다. 그런데도 이 금기를 깨고,넘고,가지고 싶은게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원래 부터 이룰 수 없는 것을 왠만한 것은 뭐든 이뤄왔던 사람이 가지려고 하니까, 결국엔 널 가질 수 없다면, (내가 가진 권력으로) 차라리 널 없애버리겠어 (그래서 너라는 사람이 없었던 이전처럼 평온했던 일상으로 돌아갈꺼야!) 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치닫는 거다.


Tu vas me détruire -<직역: 너는 나를 파멸로 이끄네> 

주교의 고뇌가 가장 잘 나타나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


부주교의 아래 계급인 피뷔스(난 원래부터 이캐릭이 참 맘에 안들었어)는 한마디로 동급계급의 (이미 잡아놓은 물고기인)약혼녀와 하위계급의 (절세미인의) 에스메랄다 사이에서 누구를 선택할까 갈등하다가 윗 계급의 약혼녀에게 돌아간 케이스이다. 하위 계급으로 내려가더라도 에스메랄다를 선택함으로서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동화같은 선택...... 따위는 개나 주라 그래! 난 내가 가진 것을 포기할 순 없어! 라는 아주아주 현실적인 캐릭터. 

극 중 거의 유일한 여자 캐릭터인 에스메랄다. 남자복이라고는 지지리도 없는 년. 절세미인 캐릭임에도 불구하고 인생에 남자라곤 달랑 셋(그래 뭐 그랭구아르 까지 넷, 하지만 별 차이는 없다)인데, 늙고 집착 심한 남자(주교), 가진 것도 없고 장애 있는 남자(콰지모도), 젊고 잘생기고 나보다 상위계층인데 임자 있는 남자(피뷔스)가 그녀가 가진 선택권의 전부다. 그 중 제일 낫다 싶은 피비스를 선택해서 인생역전을 꿈꾸었으나, 젊은 놈에게는 팽당하고, 늙은 남자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은 죄로 죽게 된다. 현실적인 에스메랄다였더라면 그랭구아르를 선택해서 조용히 삶을 살다 가는게 젤 무난 했을 거라고 생각되지만, 그럴려면 얼굴이라도 좀 덜 예쁘고, 그래서 포부라도 좀 적게 가졌어야 하는데, 이 여자가 팜므파탈이니까 이게 또 안되는 거라. 그냥 아무개한테 시집가기에는 본인의 미모가 너무 출중하거든...... 하여간 에스메랄다가 예쁘지만 않았어도 모두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인데, 역시 예쁘다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닌가 보다. 극 중에서 에스메랄다의 캐릭터는 사회적(집시)&계층적(여자) 약자의 충분조건을 모두 가지고 있다. 거의 유일무이한 여자 캐릭터인데  (물론 피뷔스 약혼자가 있지만, 같은 여자라고 돕고 이해해주고 그런거 없다. 얘 입장에서는 지 약혼자 홀린 나쁜 년인데다가 본인보다도 하위계층이니 피비스한테 자기한테 돌아오려면, 그 년을 매달고 오라는 말도 서슴치 않는다. 이렇게 말하는 여자 이름이 반전돋게 플뢰르-드-리스(백합꽃)이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처럼, 남자가 바람 피우는는 걸 목격한 상황에서 여자는 정말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콰지모도와 동급이 아닐것 같지만, 사실은 여자라 (장애인일지라도 남자인 콰지모도와)동급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런 에스메랄다를 이해해주고 온전히 사랑을 주는 것도 콰지모도 뿐이다. 

콰지모도는 장애를 가지고 있기에 본인이 최하위계층임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상위계층이 시키는 일은 의심도 않고 뭐든 한다. 게다가 물 한 잔 가져다 준 거에 '어? 이거 그린라이트인가?' 하고 금사빠가 되는 그야말로 연애경험전무의 캐릭터. 모태솔로이니 한번 불붙은 짝사랑은 식을줄을 모른다. 아니 게다가 왜 남자들은 이놈이나 저놈이나 할 거 없이 죄다 이쁜여자만을 찾는지... 이게 모든 문제의 시발점이라고!! 뭐 아무튼 콰지모도는 가진 게 없으니 잃을 것도 없다. 고로 에스메랄다에게 주는 사랑도 한이 없다. 순수한데 정말 너무 순수해서 탈이다. 그래서 콰지모도의 짝사랑이 지고지순하긴하지만 조금은 답답해 보이기도 한다. 에스메랄다가 죽고 '그녀가 나를 원하지 않아서 죽였다' 라는 말에 격분해 주인으로 하늘처럼 섬기던 주교를 죽이는 콰지모도. 콰지모도는 모든 짝사랑이 그렇듯 에스메랄다에게 끊임없는 사랑을 주고, 속으로는 그녀도 본인을 사랑해 주기를 원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사랑을 꼭 받아내리라! 이루리라! 이런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녀와 정상적인 사랑을 나누기에는 자기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떄문이다. 그래서 그냥 그녀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그녀와 친구처럼 지내는 것만으로도 그의 짝사랑은 충족되고 있었다. 그런데 주교는 같은 이유로 콰지모도와는 정반대의 선택을 해버리니, 정말 빡칠만도 하지. 최상위 계층의 주교를 최하위 계층의 인물인 콰지모도가 죽이게 되는 것도 참 재미있다. 이렇게 악인들은 꼭 '설마 네 까짓놈이!' 하며 방심하다가 죽는다. 에스메랄다가 죽고나서야 비로소 콰지모도는 에스메랄다에 대한 자신의 갈망을 마음껏 털어놓는다. 왜냐면 그녀는 이미 고인이니까. 이제 계층같은 것은 신경 쓸 필요 없게 되었으니까. 최하위 계층의 남자의 사랑이란 참 이렇게도 서럽다. ㅠㅠ 그래서 더 불쌍한 콰지모도 ㅠㅠ. 

이렇게 극 중 인물 대다수는 죽고, 어떠한 사랑도 이루어 지지 않는 채로(피비스가 약혼녀에게 돌아가긴 하지만 한번 바람피고 돌아온 남자와의 사랑이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플뢰르는 아마 죽을때까지 피뷔스를 갈구며 살테지, 그 둘은 이제 그냥 신뢰없는 사랑으로 묶여서 그냥저냥 사는거다) 비극으로 끝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라고 하는 해피엔딩 보다 훨씬 더 여운이 깊다. 이런게 인생인가 싶기도 하고, 또 몇 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건 어디서나 변함이 없구나 싶기도 하고.



Belle를 부르는 세 주인공. 콰지모도는 이 뮤지컬 이전에도 굉장히 유명하던 가수인데(근데 목소리 때문에 노래를 이런 식으로 밖에 못 부른다고 ㅋㅋ) 현실에선 저렇게 키도 크고 얼굴도 훤칠 ㅠㅠ 부주교 프롤로 역을 하신 분 역시 극에선 분장을 그지같이 그렇지, 현실에서는 저렇게 중년남자의 매력을 폴폴 풍기시는데 ㅠㅠ, 극에서는 정말 짜증나던 피뷔스도 현실에선 이렇게 라틴남자 매력줄줄 흘리면서 겁나 잘생겨보이는데! 극 중의 에스메랄다가 이걸 보았다면 아마 속 터져 죽었을 듯 ㅋㅋ

2014년 3월 4일 화요일

룩셈부르크 : 1차 세계대전 시기


1867 년, 런던회의에서 열강들의 보장하에 영세중립국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에서 중립국으로서의 룩셈부르크의 위치는 불안정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각 유럽의 위기상황 마다 룩셈부르크의 문제는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고,  이웃국가들의 숨겨진 합병 욕망을 고조시켰습니다. 1914 년, 룩셈부르크는 세계 1차대전에 휘말렸습니다. 1914년 8월 2일, 독일의 군대는 대공국을 침략하여, 중립국을 침략할 수 없다는 조약을 위반했습니다. 룩셈부르크 당국은 독일의 침공에 항의하였으나, 독일군대는 침공 후, 룩셈부르크에 주둔하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국가의 기관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습니다. 나라의 주권과 주 정부는 자리에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전쟁 이 후, 연합군은 룩셈부르크의 중립정책을 비판하였습니다.

전쟁 중, 주민들이 대면하게 되는 가장 큰 문제는 식량의 공급이었습니다. 전쟁의 상태는 국가 생산의 부족한 부분에 대한 소모품의 수입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정부는 배급량을 정하고, 물가상승을 통제하기 위한 최고가를 도입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암시장이 성행하였고 도시와 지방 사이의 높은 긴장감을 가져왔습니다. 물자의 결핍 , 가격 상승 과 구매력 의 손실은 사회 갈등을 촉발시켰습니다. 이러한 불만들은 노동자로 하여금 노동 조합을 구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916년 9월, 철강 산업 의 처음 두 노조가 탄생했습니다. 한 노조는 Esch-Sur-Alzette 의 광물유역 근처에서 , 나머지 노조는 도시에서 출범하였습니다. 1917 년 철강노조파업이 일어났고, 이는 독일 군대에 의해 제압되었습니다.

룩셈부르크와의 합병은 독일의 승전기념목표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독일당국은 특정 제제를 부과했습니다.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점령기에 발생했던 어려움은 수많은 룩셈부르크 국민이 나치 정권의 피해자로 죽어간 1940년부터 1944년 사이의 어려움과는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2 차 세계 대전 동안의 탄압은 국민 연대의 놀라운 단결을 불러왔습니다. 이는 점령군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으로 이어졌습니다. 반면 1차 세계대전동안의 룩셈부르크는 심각한 내부 갈등을 겪었던 나라로 비추어졌었습니다. 

2014년 1월 15일 수요일

룩셈부르크 : 경제성장

1839년 이후 신생국가인 룩셈부르크에 가장 도전적인 일은 실행가능한 경제 계발 계획을 진행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룩셈부르크는 시대에 뒤떨어진 농업국가 였습니다. 이 곳은 제혁, 섬유, 도기, 제지, 양조 등과 같은 소규모 수공업 중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소수였었고 규모도 작았습니다. 룩셈부르크는 지리적 고립과 경제적 상황으로부터 힘든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 작은 나라에게 경제발전의 의미는 나라의 개방을 의미했습니다. 1842년 룩셈부르크 대공국은 (19세기 독일의) 관세동맹에 가입합니다. 라인강 이변을 넘나드는 큰 시장과 연결될 수 있게 해주던 이 연합은 룩셈부르크에게 많은 이점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독일은 중공업을 개발하는데 필요한 자본과 노동을 제공 했습니다. 하지만 다가 올 경제무역을 위하여, (도시 간 의) 도로노선의 연결이 요구 되었습니다. 철도(라인들)의 건설은 -룩셈부르크와 티응빌(Thionville) 사이의 첫 연결은 1859년에 개시되었다- 대공국과 바깥세계를 연결했을 뿐만 아니라 국내 지역 또한 긴밀히 연결하게 되었습니다.  





관세동맹의 회원자격 그리고 철도 네트워크는 공업화 사회로 진입하는 유리한 조건들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룩셈부르크의 공업혁명을 이끌었던 것은 1840년초 룩셈부르크 남부에 매장된 철광석의 발견이었습니다. 1870년부터 계속 대규모의 철강작업들이 일어났습니다. 미네뜨(minette: 흑운모와 정장석(正長石)을 주성분으로 하는 황반암(煌斑岩)(lamprophyre)의 일종.)라고 불리우는, 인을 많이 함유한 룩셈부르크의 광석들을 처음에는 단점으로 여겨졌으나, 1879 년 영국의 시드니 토마스가 발견한 제강공법으로 룩셈부르크의 인이 함유된 선철은 강철로 변환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개시 전 날, 룩셈부르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철강 생산자들 여섯 나라 중 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1911년 뒤들랑주, 아이히, 부르바흐 등 세 개의 철강회사가 합병하여 룩셈부르크의 대표 철강업체인 아르베드(ARBED : Aciéries Réunies de Burbach-Eich-Dudelange )가 탄생하였습니다.

철강산업은 1973년 석유파동으로 인해 타격을 받고 쇠퇴하기 시작하기 전까지 룩셈부르크 주요한 경제산업으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룩셈부르크의 노동인구의 25%의 고용과 거의 60%에 육박하는 국가산업총생산량을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철강산업은 룩셈부르크 국가재산의 주요 근원으로서, 산업시대동안 룩셈부르크 사람들이 영유하던 높은 수준의 삶의 근간이 되었던 산업이었습니다.


Avenue de la Liberté거리에 있는 ARBED본사건물. 
높은 유지&보수 비용 때문에, 현재는 근교의 현대적건물로 이전되었다.

산업화는 나라의 인구와 사회구조를 변화시켰습니다. 나라북부의 외즐리의 농부들은 광산이나 공장에서 일하려고 그들의 땅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지역노동시장의 수요는 이들만으로는 충족되지 않았습니다. 1890년부터 지금까지다른나라로의 해외이민은 사실상 멈추었고 룩셈부르크는 이민국이 되었습니다. 외국인들은 여러물결은 타고 도착했습니다. 처음엔 독일인들이, 그다음엔 이탈리아인들이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1960년대부터 계속 포르투갈 사람들이 룩셈부르크로 이민을 오고 있습니다. 1910년 이민자는 이미 전체인구의 15.3%를 넘어섰으며, 오늘날, 이민자는 거의 42%에 육박하게 되었습니다. 노동 뿐만아니라, 자본과 시장에 대한 높은 해외 의존도는 룩셈부르크 경제의 영구적인 특성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룩셈부르크는 세계2차대전 직 후, 독일과의 관세동맹을 철회하고, 1921년 7월 25일 벨기에와의 경제및 통화연합( BLEU : Belgium-Luxembourg Economic Union)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이 조약은 50년동안 지속되는 것이었으나, 이 후 두 번 더 연장되었습니다. 아직 벨기에와 룩셈부르크 경제연합은 두 나라 사이를 오랫동안 하나로 묶어 놓았습니다. 벨기에 프랑이 보통 화폐로 통용되었기는 하지만 ,룩셈부르크는 룩셈부르크 통화를 발행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참고 : 네이버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History of the Grand duchy of Luxembourg,Wort.lu 기사

2013년 12월 12일 목요일

룩셈부르크 2013 총선비교

출처: www.mierscher-schoulen.net

총선결과는 기독사회당(CSV)이 38.3%의 득표로 총 60석중 23석을 가져가면서 총선의 승리자 인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최다의석임에도 불구하고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반쪽의 승리로 머물고 만다. 노동사회당(LSAP)과 민주당(DP)은 21.7%의 득표로 각각 13석씩을 획득했으며, 녹색당(Greng)은 10%의 득표로 6석을 얻었다. ADR과 좌파당(Lenk) 은 각각  5% 와 3.3% 의 득표로 3석, 2석을 획득했다. 이번 총선에서 실질적으로 승리한(?) 당은 민주당과 좌파당이다. 2009년의 총선과 비교해 전반적으로 CSV와 LSAP의 표심은 줄어든 반면, DP와 Lenk는 더 많은 표를 받았다. 그 외의 다른 당의 변화는 그리 큰편은 아니었다. (+-2% 정도) 해적(Piraten)당 의 선전(+2.9%)도 돋보였으나, 의석을 얻는데는 실패했다. 


출처 : 위키피디아

지역별 획득 의석은 북부 9석, 동부 7석, 중부 21석, 남부 23석 획득. 이로써 룩셈부르크 사람들은 주로 중부지역과 남부지역에 모여사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중부지역과 남부지역의 표심이 중요하다. 총 투표율이 어느정도인지 보려고 했는데 어디에서도 전체투표율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역별 투표율을 봤을 때, 적어도 80%이상의 투표율을 보이는 것은 확실하다.

장-클로드 융커는 남부지역에서 55968표를 얻었으며, 자비에르 베텔은 중부지역에서 32064표를, 중부지역에서 에티네 슈나이더는 19682표를 얻었다. 융커는 말할 필요도 없이 CSV내에서 최다표 획득 (두번째와 거의 두배차이) 베텔은 DP내에서 최다표를 획득했으나, LSAP의 최다 득표자는 남부지방에서 38257표를 얻은 진 아셀본 (현 외무부장관)이다 (슈나이더는 당 내에서 7번째 최다득표, 왜냐면 LSAP의 표 밭이 남부지방이라 6번째까지 죄다 남부지방에서 나옴)

총선날 울 남편은 당연히 추가근무를 했는데, 새벽 늦게 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느 한 선거구의 개표에 문제가 생겨서 늦어진 거라고 했는데, 알고보니 그 선거구에서 투표를 도와주던 사람들이 자기네들이 그 곳에서 투표한 거를 생각 못하고, 개표하니까 표가 더 나와서 다시 세어보고 다시 세어보고 하다가 나중에서야 자기네들 표를 안 셌다는걸 알았다고 ㅋㅋㅋ 울 남편은 그것때문에 빨리 퇴근 할 수 있었는데, 퇴근도 못하고 있었다고 매우 억울해 했다 ㅋㅋㅋ 다음선거에는 이런 일 없기를 ㅋㅋㅋ

http://www.elections.public.lu/fr/elections-legislatives/2013/resultats/index.html

2013년 12월 11일 수요일

룩셈부르크 연정출범

지난 10월 20일은 룩셈부르크의 총선이었다. 그 전에 바로 독일총선이 있었는데, 독일총선의 결과는 사실상 FDP의 몰락과  CDU의 승리로 끝났다. FDP의 지지자들이 왜 FDP에 등을 돌렸는지가 흥미로 왔는데 그 이유는 바로 내세운 공약을 지키지 않아서라고. 지지자의 80%가 그 이유로 FDP의 지지를 철회 한 것이다. 

<연합뉴스> 룩셈부르크 소수3당 연정 출범…19년만에 정권교체

룩셈부르크의 정치사는 정당정치가 시작되면서 부터 100년 넘게 거의 기독사회당CSV이 다수 여당으로 장기집권했다고 보면 된다. 전 총리였던 장 클로드 융커는 CSV 소속으로 1995년 총리직을 수락한 이 후, 쭉 연임해 오다가 이번에 19년만에 총리직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19년 동안!! 무려 19년 동안 총리직에 있었다니!! 오죽하면 CSV의 슬로건은 "우리에게는 융커가 있다!" 이거였다 ㅋㅋ 한나라의 총리로 19년 연임을 한걸 깰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다. 독일의 헬무트 콜이 16년이었고, 앙겔라 메르켈이 이번 총선에서 CDU의 승리로 3선연임이 확정적인 가운데 2017년까지 일하면 12년(마거릿 대처가 11년이었으니까, 여성총리로선 앙겔라가 현재 1위다) 총리직 수행이라는 걸 보면 19년은 정말 긴긴 기간이었던 거다.

국정원의 불법도청 비리가 드러나고, 여기에 직접적인 연루사실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총리가 국정원의 수장인지라 융커가 정보기관의 비리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했기에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오자 융커는 총리직에서 내려와 총선을 다시 치루게 된다. 진짜 미안해서 책임지러 내려온것 같지는 않고(언제 정치인들이 뭘 책임지는사람들이던가), 조기사퇴하는 식으로 부드럽게 마무리하면서,  다음번 총선을 노린 것이 아닌가싶다. 다음 총선에 또 승리하면 어차피 또 융커가 연임하는 거니까.  영예롭게 내려오진 못했지만 그래도 융커의 지지층은 이 나라에서 매우 넓고 단단한 편이기에. (우리 남편도 융커찍을수 있었다면 찍었을거라고, 그런데 지역구가 달라서 투표용지에 이름이 없어서 못찍었다고 ㅋㅋ ) 그래서 이번 총선이 어찌 될지 더 궁금하기도 하였는데, 총 60석의 의석중에 CSV가 23석 으로 과반확보에 실패하면서, 결국 룩셈부르크 국민들 역시 국가비리에 대해 투표로서 철퇴를 가한 셈이다. 그게 아무리 날고 긴다하는 정치인인 융커였다 하더라도 국민의 선택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융커를 동정하실 필요는 없다. 융커는 지금 주변에서 국제EU기구로 가서 일하라고 하는 조언을 너무 많이 받고 계시단다)

이건 여담인데, 어느날인가 한번은 남편하고 정치얘기하다가 들은 이야기인데, 그 때 교통부장관 아들이 음주운전이었던가 하는 경미한 사고로 경찰에 연행됐는데, 그걸 교통부장관이 대놓고 직접 압력 줬다기 보단 "얘 내 아들이야. 나 누군지 알지?" 약간 이런 뉘앙스 정도?로 경찰에 압력을 줬나봄 (그래 고슴도치도 지 새끼는 이쁘다는데, 지 빽으로 좀 빼주고 싶었겠지 이해는 해) 근데 이걸 기자가 알고서는 신랄하게 까대기 시작함. 장관은 그런적 없다고 발뺌하고 넘어가고, 우리남편은 그 기사를 읽고 이렇게 공권력을 사사로이 휘둘러도 되냐면서 목청에 핏대를 높이는데, 난 사실 너무 부러웠다 ㅠㅠ 한국엔 29만원으로 평생먹고 사시는분도 있는데, 지금 이걸 공권력 남용이라고 저렇게 열받아 할 수 있다니... 물론 원칙적으로는 그래, 해서는 안되는 일이지, 맞는 말인데... 한국 정치의 스케일을 알면 너는 아마 뒤로 나자빠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런 경미한 사건(?)에 분노하는 네가 참 부럽다고!!


Letzte Aktualisierung: 21/10/2013 00:02
CSV (23)LENK (2)ADR (3)GRENG (6)LSAP (13)DP (13)
CSV23
DP13
LSAP13
Déi Gréng6
ADR3
Déi Lénk2
KPL0
Piratepartei0
PID0



2009년 총선 후 연립정부에 참여했던 노동사회당(LSAP)과 야당인 민주당(DP)은 각각 13석씩을 획득했으며 녹색당은 6석을 얻었다. 결과가 나오고 나서 처음에 3당 연합체제가 이야기 되었을 때는, 반신반의 했던 것 같다. 말이 쉽지 3당 연정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런데 3당 연정 외에는 또 다시 CSV와의 연정이 될 수 밖에 없는데, 또 그럴 수는 없으니 어려워도 3당 연정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일이기도 했다.

룩셈부르크 군주인 앙리 대공(大公)이 민주당 당수인 자비에르 베텔(Xavier Bettel)에게 정부 구성을 위임하면서, 베텔이 차기 총리가 되었다. 베텔은 2011년부터 룩셈부르크 시의 시장직을 맡고 있었다. 새정부의 출범은 지난 12월 4일부터였다. 부총리는 에티네 슈나이더로 LSDP당의 당수이다. 연합뉴스에서 이사람도 게이라고 소개해서 (베텔은 원래 이동네에서 게이로 유명하다)  "에티네도 게이야?" 라고 물어봤더니 남편은 금시초문이라고 ㅋㅋ 아침에 둘이 인터넷 검색하고 생난리 ㅋㅋ 남편은 아니라고 방방 뛰었는데, 위키피디아에 게이라고 뙇! ㅋㅋ 인터뷰 링크 까지 뙇! ㅋㅋ 

Luxembourg to become first country to have gay prime minister and gay deputy PM

울남편은 어디 듣도 보도 못한 영국발 뉴스 하나로 슈나이더가 게이라는게 증명되는건 아니라면서 믿고 싶지 않은 눈치 ㅋㅋ 아놔 ㅋㅋ 노동사회당에 직접 전화라도 해봐야 하나? 게이인지 아닌지 확인차? ㅋㅋ 총리도 게이고 부총리도 게이인 이 쿨한 동네 ㅋㅋ 어쩔꺼야 ㅋㅋ 엊그제 크리스마트 마켓 갔을 때, 남편 왈 "어 저기 베텔 지나간다!" 나는 베텔 볼려고 두리번 거리는데 남편 또 쿨하게 한마디 "이미 지나감" =-= 우이씽 그럴거면 말을 말던가 ㅋㅋ 총리가 막 돌아다녀도 아무도 몰리지 않는 쿨한 동네 ㅋㅋㅋ  기사를 읽어보니 내년에는 룩셈부르크에서의 동성결혼도 허용이 될 듯하다.

2013년 12월 10일 화요일

2013 한국 방문

- 부산 김해공항에 내렸다. 경전철을 탔는데 안내방송이 "이번 내리실 역은 덕두, 덕두 입니다. the next stop is 독~뚜~~ 독~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발음 왜 이래 ㅋㅋㅋㅋㅋㅋ 하필 역이름도 덕두 ㅋㅋㅋㅋㅋㅋㅋㅋ 잊혀지질 않네 ㅋㅋㅋㅋㅋ

- 체류기간이 짦아서 스케쥴은 늘 full 이었다. 서점에 갈 시간도 없어놔서 지하철에서 만델라 평전을 구입했는데,(그런데 유럽 돌아오는 날 만델라 타계. 지인이 너 이 책 알고 샀냐며;;) 그러고 보니 대한민국 지하철은 정말 대단한 곳이었다. 책 뿐만 아니라 화장품, 의류, 음식 등등 별별 제품을 다 만날 수 있는 곳이 대한민국의 지하철이었다. (하기사 유동인구만 따져도 지하철 노점은 정말 대단한 상권이다.) 뿐만 아니라 지하철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품목들도 종종 있다. 예를들면 선물로 늘 인기가 좋은 지퍼넥타이. 3개에 만원하는 이 상품은 지하철 노점 말고는 살 수 있는 곳이 없어서, 나는 이걸 사러 구지 가지 않아도 될 역인 종로 3가까지 지하철로 돌아 가야만 했다. 

-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옷은 대부분 패딩. 대개는 패딩. 많이들 패딩. 패딩패딩패딩 뿐이었다. 집에 온 다음날, 엄마가 날 데리고 백화점에 가서 사준 옷도 패딩이었다. 패딩을 많이 입기 때문에 패딩을 많이 파는 것인지, 모든 브랜드가 패딩상품을 내놓기 때문에 사람들이 패딩만 입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외국사람들은 동양인의 얼굴구분을 잘 못하는데, 입는 옷까지 획일적이니 우린 아마 더 구분하기 힘들어졌겠지? ㅋㅋ 한국에서 유행 이라는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다시금 확인했던 순간. 물론 나도 그 패딩을 지금 잘 입고 있지만 ㅋㅋ

- 명동에서 길거리 좌판에서 맘에 드는 귀걸이를 골라 아주머니에게 건냈는데 아주머니가 만천원을 부른다. 내가 좀 많이 고르긴 했지만 만원은 안 넘어 갈 것 갔았는데 한국말로 다시 물으니 팔천원이란다. 아주머니한테 왜 그랬냐고 물어보니 외국인인줄 알았다며 (아니 이게 말이야 방구야 =_=)내년에 우리 식구들 이 부근에 떨궈놓을려 했는데 바가지 안쓰게 교육 잘 시켜야 겠네...

- 강남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하지만 12월인데도 거리에서는 단 한 번도 캐롤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연말연시 분위기도 나지 않았다. 경기가 그만큼 안 좋다는 이야기 일까? 강남은 사람들로 꽉 차있는 모습이었지만, 사람들의 얼굴 속에서 연말연시의 기쁨이나 여유 같은 단어는 읽을 수 없었다. 자선냄비의 종소리는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공허하게 메아리 쳤다. 그 종소리가 너무나도 삭막하게 들려 듣는 내가 짜증이 다 날 정도 였다. 서울의 크리스마스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